제10회
수상자 최형락
백지(白紙)
한지는 한국의 전통 종이다. 아흔 아홉 번의 손길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백지(白紙)라고도 부른다. 그만큼 생산 과정이 복잡하고 지난하며 사람의 땀과 정성이 들어가야 만들어지는 종이라는 뜻이다.
작업 과정은 대략 이렇다. 겨울에 벤 1년생 닥나무를 쪄서(닥무지) 껍질을 벗기고 말린 뒤
잿물에 삶는다(증해). 이를 볕 드는 물에 며칠 담갔다가 티를 고르고 방망이로 내려쳐(고해) 짧은 섬유질로 만든다. 이후 황촉규 뿌리로 만든 닥풀과 함께 큰 물통에 넣고 섞은(해리) 뒤 대나무발로 떠서(초지) 말리고 펴면(도침) 한지가 된다. 물론 이 과정에는 매우 까다로운 원료 조건과 수많은 세부 공정, 부차적인 작업이 추가된다.
‘비단이 오백년, 한지가 천년 간다’는 말처럼 한지는 매우 뛰어난 보존성을 자랑한다. 닥나무 종이로 제작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신라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은 모두 1300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이탈리아의 국립기록유산연구소도 미술품 복원용지로 한국의 한지를 사용한다.
그 우수성에 비하면 오늘날 한지의 위상은 높지 않다. 중국의 선지나 일본의 화지처럼 국가 주도의 산업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지가 쓰이는 곳은 현저히 줄었고 제작하는 곳도 만드는 이들도 급격히 감소했다. 현재 한국의 전통 공방은 스무 곳이 채 되지 않는다. 이마저도 영세하고 작업자들의 연령대가 높다. 후계자를 둔 곳은 몇 곳 되지 않는다
. 전국의 한지 만드는 곳 19곳을 다니며 지장(紙匠)들을 만났다. 모두 어려움 속에 한지를 뜨고 있었지만 자부심과 고집만큼은 대단했다. 이미 오래 전 사양길에 접어든 한지 산업이 이들의 고집으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지장들에게서 또 하나의 인간성을 발견한다. 혼과 생을 바쳐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려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힘이었다. 오랜 전통과 위대한 유산, 그리고 그 옆에서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빠르게 달려온 우리가 놓칠 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