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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할머니, 엄마, 나를 포함해 3대 모녀가 태어나고 자라온 우리의 고향은 평택이다. 우리 삶의 터전은 미군 부대를 중심축에 놓고 돌아가고 있다. 엄마는 어릴 적 미군의 비행기가 떴다고만 하면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태극기를 들고 나가, 영문도 모른 채 '웰컴 투 코리아'라고 외치며 팔이 빠지도록 손을 흔들었다고 한다.

#2 나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붉은 벽돌로 지어진 빌라 3층에 할머니와 둘이 살았다. 그 빌라 2층에는 외국인 존이 살았는데, 영국의 유명 록 밴드 퀸의 ‘We Will Rock You’를 전축을 이용해 크게 틀어 놓아 매번 할머니의 화를 불러일으켰고, 빗자루 들고 밑에 층에 내려가게 만들었다. 그 덕에 베이스가 둥둥 울리는 밴드 음악은 우리 집에서 금지됐다.

#3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전학생이 자주 왔다. 예범이, 연우, 유빈이, 원진 모두 군인들의 자녀이다. 이들은 남들과 깊게 친해지지 못한다. 마음이 가까워지려나 싶으면 다시 다른 지역으로 떠나버렸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평택 안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철조망과 빽빽한 회색 벽들로 장벽이 둘러싸인 또 다른 세계가 있다. 그 세계를 둘러 살고 있는 나는 하루에 서너 번은 집 안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굉음을 내뿜는 전투기가 오가고, 오후 5시와 10시만 되면 시간을 알리는 요상한 사이렌이 도시 전체에 울리는 걸 당연시 여기며 살아왔다. 장벽 안의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장벽 밖 주변은 외국에 온 것만 같은 이국적인 간판들과 가게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과는 문화적으로 거리가 멀어 보이는 다이아몬드 비즈가 촘촘히 박힌 화려한 실크 여성 파티복과 각 잡힌 미제 양복, 미군의 위상을 뽐내듯 건담, 전투기 등의 피규어들이 '나 강해요.'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미군 부대 앞 주변 길거리를 꽉 채워 장악하고 있다.

거리는 외출 나온 미군들로 북적이고, 소음을 풀어헤쳐보면 한국어를 제외한 여러 언어가 섞여 있다. 정신줄을 놓아버리면 여기가 외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 윤곽은 밤과 주말이 되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형형색색의 달러 냄새들이 나를 이방인 취급한다. 이곳은 외국인이 대부분인 것은 물론, 외국인만 출입 가능한 가게, 영어를 하지 못하면 알바조차 못 하는 동네이다.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은 비슷하다. 카피한 명화, 두툼한 카페트와 이불, 피규어와 밀리터리 이미지가 가득한 군용품. 이러한 물건을 파는 몇 십 년 된 가게의 상인들도 한국인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그들만을 위한 세트장 같았다.

이곳에선 우리가 엑스트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