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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태생부터 이주민의 도시였다. 해방과 한국전쟁 후 유입된 피란민들, 산업화 시기에 유입된 노동자들, 그리고 오늘날 해외에서 온 다양한 이주민들까지. 나 역시 이주민이다.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부산으로 이주했고, 멕시코에서 노동자로 1년을 생활했던 경험이 있으며, 국제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고향에 정착한 친구도 있다.

‘이주’는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배타적이다. 텃새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이제 이 말은 인종차별로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이주는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문화와 전통을 창조하는 원동력이다. 대부분의 신화들이 이주로 시작하는 것을 보라.

최근 지역 소멸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던 나는, 이주라는 주제가 소멸과 만나면 매우 창조적인 예술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 과정에서 ‘파초(芭蕉)’라는 식물을 알게 되었다. 바나나와 똑같이 생겼지만 다른 종인 파초는 한국으로 건너와 추운 겨울을 견디며 뿌리를 내린 ‘귀화’식물이다. 귀화 과정에서 파초는 선비와 스님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파초는 따뜻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풀이다. 파초가 주는 영감을 얻기 위해 그들은 파초가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도록 보살폈다. 그렇게 파초는 ‘전통’이 되었다. 한국의 혹독한 겨울을 나며 귀화한 파초는, 낯선 땅에서 삶을 일구는 이주민들과 닮았다.

파초가 세대를 잇듯, 이주한 사람들도 그랬다. 덕분에 소멸되던 지역은 새로운 창조적 잠재력으로 활력을 얻고 있다. 이주민 2세대 아이들은 지역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들이 차별과 배척이 아닌 따뜻한 환대 속에서 성장해야,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다. 이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적극 고민해야 우리는 새로운 전통과 문화적 저력을 창조할 수 있다. 이에 우리의 이웃인 이주민, 이주민인 우리를 기록하며, 새로운 사회통합의 가능성을 예술을 통해 탐색하고자 한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특정 ‘이주민’ 집단을 노출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와 삶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 변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이 변화를 창조적 잠재력으로 변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 가능성에 사진작업으로 응답하는 것은 예술의 사회적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