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밤.
“조심해서 다녀와”
매일 같이 반복되었던 아내의 인사가 그날엔 시시각각 무너지고 있는 일상의 경계를 가리키고 있었다.
계엄령이란 갑작스러운 단어는 어리둥절함을 가져다주었다. 사고가 정지했다. 그래서일까, 잠깐의 고민 후 집을 나설 땐 의외로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저 이 상황에 나를 던져 넣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의 나는 눈으로 보이는 것과 이해될 수 있는 것의 간극에 서 있는 침묵의 관찰자였다. 내 삶의 경험 속 비교할 데 없던 상황이라 지각에 이르지 못한 채 그저 감각만이 바삐 작동하고 있었다.
국회가 가까워질수록 미묘한 기류의 변화가 느껴졌다. 싸늘해진 공기를 뚫고 국회 앞에 도착했을 때, 아직 한산한 공간엔 막연한 긴장감이 차 있었다. 그 긴장감은 곧 성난 시민, 갈 곳을 잃은 국회의원, 그들과 맞선 경찰, 긴급 출동한 군인들로 대체되었다.
시민과 경찰은 국회 정문에서 밀고 당기며 팽팽히 맞서고 있었고, 아직 국회로 들어가지 못한 몇몇 국회의원들도 제지당하고 있었다. 그렇게 철문 앞에 맞선 이들이 대립하며 꼼짝 못 하고 있을 때, 붉은 신호등 위로 유유히 날아가는 특수부대의 헬기가 보였다. 가볍게 날리는 눈송이는 현장에 이질감을 더했다.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군인들이 버스에서 내려 담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누구보다 빠르고 강할 것 같은 그들은 여린 시민의 손에 붙잡혀 제지되었다.
제복으로 감추려 했던 개인성이 그들의 행동으로 드러난 걸까? 어쩌면 대다수 시민의 저항처럼, 그들도 그들의 군복과 싸우는 게 아니었을까.
진입을 포기한 군인들은 출발했던 버스로 되돌아오고, 오히려 몇몇 시민들은 그들을 성난 시민들로부터 보호하며 돌려보내 주기도 했다.
한편, 성난 파도 같은 시민들과 홀로 맞서는 이도 있었다. 그는 현 사태를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의 등엔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꽂힌 가방이 메여 있었다.
그날 만났던 총과 맨손의, 금배지와 방패의, 제복과 개인성의, 시민과 시민의 대립들. 현장의 수많은 대립은 상상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대립에 대한 이분법적인 시선은, 살아 움직이는 갖가지 역설적 행위가 생략된, 낮은 해상도의 그림에 지나지 않았다.
현장엔 틀에서 튕겨 나온 사람들이 보였다.
무엇인가를 기대하지 않았고, 예측하거나 예단하지 않았었다. 돌이켜 보면, 그렇게 날것의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 경험은 이제 사진으로 남아 삶 속에서 언제고 다시 해석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서로 다른 수많은 이해를 낳을 것이다.
나를 넘어서는 경험을 할 땐, 평소보다 빠른 심장 소리가 들린다. 발을 내딛는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